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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관 - 등대 (灯塔)

우리가 짐을 지거나 들고 낑낑대며 오르내리던 산길인데, 포장까지 되다니…. 노래를 부르거나 누구 욕을 하거나 혹은 몰래 전역일을 헤아려 보던 가파른 언덕길이었는데, 무엇보다 포장이 되다니…. 몬당에서 초소 방향인 용월사 쪽으로 꺾을 때는, 월전포에는 지금도 은빛 반짝거리는 멸치막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때 멀리서 한참을 보아야 검은 섬 아가씨들 등이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들은 우리가 월전포의 멸치막을 지나치면, 갑자기 새끼 제비처럼 조잘거렸다. 반말은 기본이었는데,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몬당과 용월사 사이의 공터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등대로 바로 오르는 길이고, 등대에서 용월사 바싹 뒤의 초소 자리를 찾아 내려갈 요량이었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희미하나마 제법 길이 있었다. 이 공터에서 등대에 이르는 길은 초소에서 오르는 길보다 훨씬 수월했다. 경사도가 말이다. 등대의 모습은 인터넷 지도에서 보았던 대로 설명하겠다. 등대에는 우선 우물이 눈에 띄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뚜껑이 덮인 우물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당시에도 그 우물이 무서웠던 생각이 났다. 당연히 ‘어느 처녀가 빠졌을까’로 시작되는 상상이 가동된 무서움이었지. 그리고 등대지기가 살았는지, 초소에 근무할 때도 반파 상태였던 건물은 사라지고 없어졌다. 우리는 그 건물 안이나 등대를 에워싼 담장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주 불량한 복장으로 등대 나들이를 하곤 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들르게 될 초소 자리는 용월사 뒤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초소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는지 숲이 되어 있었다. 언제 건물이 있고 사람이 살았냐는 식이었는데, 숲이 뻔뻔한 점령군으로 느껴졌다. ‘뺏을 곳을 뺏어야지!’ 초소는 용월사와 숲에 길과 터를 잃었다. 당시 초소에는 내무반, 전망초, 공용화기실, 써치실과 그에 딸린 발전실, 화장실, 취사장 외에 전망초 뒤이자 입구에는 공터가 있었다. 물론 전망초 앞에도 공터가 있었다. 특히 써치를 가동하기 위해 발전실에서 발동기를 한 번 돌리고 나면, 그 좁은 공간의 시끄러운 소리에 우선 귀가 먹먹했고 가슴이 뛰었다. 다녀 본 초소마다 발전실은 좁기도 했다. 예상한 큰 소음이었지만, 나는 매번 놀라기 일쑤였다. 내가 소리에 포위되거나 붙들렸다는 생각에 겁도 났다. 숨어있던 간첩이 나를 때려 죽어도 모를 정도로, 혼을 빼먹는 소리였다. 특히 남해 미조리에 간첩이 나타나던 밤에는, 밤새 주기적으로 써치를 가동했었다. 먼 훗날 군대에 간 아들이 그 경상남도 미조리 해안에서 근무했는데, 나와는 시차와 바다를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근무한 셈이다. 휴가 나온 아들에 그 미조리 해안에 간첩이 나타난 것을 이야기했더니, 알고 있다고 짧게 답했었다. 녀석이 쌀쌀맞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당시에 마주 보이는 전라남도 여수에 근무했다고까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왜 냉정한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돌아가신 내 아버지에게 쌀쌀맞았으니까,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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